부정적 신호

Others 2019. 2. 18. 10:32

벌써 몇 년 전인데 큰 회사에 다닐 때 이야기다. 신변의 변화로 다른 연구소로 옮겼었다.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를 다루는 팀으로 갔는데 오래 전부터 관심이 있던 분야라서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프로젝트의 내용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들과 많이 달랐고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도움을 주기로 한 곳에서는 달가워하지 않는 간섭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 쪽 입장이 된다면 별로 함께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내 프로젝트 사람들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 경험을 돌이켜봐도 그랬다. 내가 속했던 조직이나 프로젝트에 외부의 자극이 들어오면 날카롭게 반응하는 된다. 간섭 같아 보이고 눈 앞에 놓인 산적한 문제와 일거리들 위에 해야할 일을 더 얹어 주는 것처럼 보여서 그게 그렇게 싫었다. 아마 내가 찾아갔던 분들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 때 나는 현실과 이론과의 괴리에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퇴직을 하고 열 명 남짓의 스타트업으로 옮겼다. 매일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해야 했지만 내가 가진 것들을 쏟아부었고 그러면서 많이 배웠고 경험했다. 그 뒤로 런던으로 옮겨 또 다른 스타트업에서 일했다. 


작은 회사에서 일하면서 내가 만드는 소프트웨어가 고객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경험을 했다. 특히나 런던에서 일할 때, 내가 오늘 코딩하지 않으면 릴리즈가 되지 않고 지금 당장 코딩하지 않으면 라이브 이슈가 해결되지 않는 짜릿한 경험들을 했고 그것이 참 좋았다. 그러면서 최초로 프로모션을 한 엔지니어가 됐고 엄청난 신뢰를 얻었다. 한국에서는 비슷한 스타트업이었지만 그렇게 즐겁게 일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지금은 미국.


시간이 지나면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한 번은 이름이 잘 알려진 큰 회사에서 일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이력에 글로벌 회사를 하나 넣어두면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커리어를 펼칠 때 플러스 요인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과거 내 경험과 지인들의 조언에 비추어 보면 한국 사회에서는 큰 회사, 유명한 회사 경력을 높이 평가해준다. 딱 이런 이유 하나 때문에 지금 회사의 오퍼를 수락했다. 


그런데 어떡하냐. 이제 겨우 2주가 지났을 뿐인데 벌써부터 강렬한 부정적 신호를 감지했다. 여긴 니가 있을 곳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내 깊은 곳 어딘가로부터 나오는 신호. 오퍼를 두 개 받았었다. 하나는 유망해 보이는 스타트업, 하나는 지금 이 회사. 지금 이 부정적인 기운이 이 회사를 선택해서 내게 찾아온 기회비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를 좀 더 제대로 이해하고 나를 좀 더 나로 만드는 촉매라고 해야겠다. 나는 하기 싫은 일, 재미 없는 일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닫게 된 거다.



Posted by 코딩새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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